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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돋보기/영화 돋보기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 1976) 감상평

by go9ma 2016.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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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놀랍게도 내가 태어난 해에 나온 영화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로, 그의 천재성이 드러난 작품으로 손꼽힌다.

 

영화 시작 부분,

어라? 배우 이름 중에 조디 포스터가 보인다. 그래서 영화 내내 조디 포스터를 찾았지만 조디 포스터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매력이 넘치는 시빌 셰퍼드만 발견할 뿐이다.

도대체 조디 포스터는 어디에서 나온단 말인가!

그런데 놀랍게도, 조디포스터는 가출한 14살 소녀 창부 아이리스로 나온다. (ㅡ.ㅡ) 오 마이 갓!

풋풋한 청소년 시절의 조디포스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택시 기사 트래비스는 정상적이지 않다.

우선 그는 심각한 불면증이 있다. 사람은 잠을 제대로 못자면 정신적인 이상이 온다. 뇌에 독성 물질이 쌓이고, 그것은 뇌를 망가뜨린다. 트래비스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 속 인물들도 연신 그를 도우려 할 정도로 그는 뭔가 불안해보인다.

 

그는 사회에 불만이 많다. 특히 거리의 마약, 매춘, 강도 같은 것을 쓰레기라 칭하며, 새로운 미국 대통령이 그것을 한 방에 처리해주길 바란다. 이 부분에서 트래비스가 어떤 인물인지 드러난다. 해병대 출신에, 보수적인 정치 시각을 가진 그다.

 

그런데 그런 그는 아무렇지 않게 포르노 극장에 출입한다. 그는 오히려 다른 정상적인 부부들도 보러 온다며 그것이 정상적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나이 어린 창녀는 악의 소굴에서 구해주고 싶어 한다.

여기엔 매우 독특한 설정과 시각이 드러난다.

 

우선 포르노는 마약, 매춘, 강도와는 다르다.

마약, 매춘, 강도는 범죄이자 불법이다. 그래서 나쁘다. 반면 포르노는 미국에서 합법이다. 주인공 트래비스는 합법적인 포르노를 즐길 뿐이다. 합법이니까.

 

또 포르노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배우들 역시 당연히 정상적으로 자기 의지로 촬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트래비스는 돈을 지불하고 그 영화를 본다.

그는 왜 포르노 영화를 보는 것일까? 영화 속에서 트래비스는 외로움을 토로한다. 포르노 속의 남녀는 그런 그의 외로움을 대리만족으로 풀어주는 도구다.

 

그런데 그런 그의 취미생활을 시빌 셰퍼드(뱃시)는 경멸한다. 트래비스가 거리의 범죄를 저주하듯이 뱃시는 포르노 영화관에 출입하는 트래비스를 경멸한다. 트래비스는 이에 자존심이 상한다. 포르노는 이 나라에서 합법이고, 자신은 그것을 즐겼을 뿐이다. 이건 범죄가 아니다. 그런데 나는 왜 무시 당하고 경멸 당해야만 하는 것인가. 

 

감독은 아마도 이 부분에서 미국 사회가 가진 모순을 지적하고 싶었나보다. 포르노는 왜 불법이 아닌 것인지... 일반인들이 그렇게 경멸할 정도면 불법으로 만들던지, 아님 합법이라면 모두가 그것을 인정해야한다. 하지만 트래비스와 뱃시의 데이트에서 보듯이 한쪽은 포르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한 쪽은 그것을 경멸한다. 단순히 남자와 여자의 문제로 보기엔 감독은 좀 심각한 사회적 병리 현상을 지적하는 거 같다.

 

또는 여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순진한 한 남성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포르노야 남자들을 위한 문화이지, 여성들에겐 통하지 않는다. 택시 기사라는 아웃 사이더는 뱃시가 속한 미국 사회의 주류엔 포함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두 번째,

트래비스는 왜 대통령 후보를 암살하려고 했을까?

 

트래비스는 자신을 무시하는 뱃시가 모시는 대권 후보를 죽이려 한다. 그는 정치엔 관심이 없다. 단지 자신이 좋아하는 여성이 일하는 곳의 대권 후보라서 그를 택시 손님들에게 추천한다. 

하지만 뱃시에게 차이자 트래비스는 대통령 후보를 암살하기로 결심한다. 왜 그랬을까? 

 

사랑하는 그녀를 정복하지 못한 그는 그 복수의 방법으로 그녀가 모시는 대통령 후보를 암살하려 했던 것이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 받은 복수. 그 뿐이다.

 

하지만 삼엄한 경호 탓에 거사는 실패를 하고, 그의 그런 분노는 매춘부와 마트 강도에게 향한다.

트래비스는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흑인 강도를 쏴 죽인다. 하지만 마트 주인은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며 그를 돌려 보낸다. 

또 그는 아이리스를 구하기 위해 그녀가 있는 매춘 업소를 급습, 관련자들을 처단한다. 그런데 강도도 그렇고, 매춘업장의 조직원들도 그렇고, 과연 이들이 죽을 짓을 했나? 아이리스 역시 청소년이지만 자기 의지로 매춘부가 된 것이다. 물론 집에 가려면 언제든지 갈 수 있다. 때문에 매춘업자들은 딱히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는 건 아니다. 즉, 총에 맞아 죽을 정도로 나쁜 짓을 한 인간들이 아니란 얘기다. 강간범이나 살인자들이 나쁜 거지, 이들은 그저 돈을 받고 매춘을 중계했을 뿐이다.

 

그런데 트래비스는 그런 매춘업자들을 무참히 총으로 살해한다. 

 

하지만 그 이후가 황당하다.

죄없는(?) 사람들을 죽인 그지만 범죄자들을 소탕한 것으로 알려지며 일약 도시의 영웅이 된다.

그리고는 다시 일상 생활로 돌아오게 된다. 분명 살인을 했는데 그는 처벌받지 않은 것이다.

 

여기서 트래비스는 양면성을 극대화한다.

매춘은 안 되고, 포르노는 괜찮단 말인가? 매춘은 직접적인 관계이고, 포르노는 간접적인 대리 만족이라는 점도 다르지만 매춘을 그렇게 경멸할 정도라면 포르노도 경멸해야함이 맞지 않을까?

 

그러면서 시빌셰퍼드는 다시 트래비스에게 접근한다.

그녀는 그의 기사를 이야기하며 그에게 접근한다. 하지만 트래비스는 그녀를 무시하며 묘한 미소를 남긴다.

 

그는 왜 그녀를 거부한 것일까? 다음을 기약하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일까?

 

 

단순하게 정리를 해보자면,

사회의 아웃사이더 택시 기사 트래비스는 제대로 연애하는 방법 조차 모르는 사회 부적응자이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시당하고 버림을 받자, 그 복수의 분노를 엉뚱하게 매춘업자들을 향하게 된다. 그 결과 가출했던 소녀는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 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살인을 한 트래비스는 사회 정의를 지킨 영웅이 된다. 그리고 자신을 무시하며 떠났던 사랑하는 여인도 다시 돌아오게 된다.

 

뭐랄까... 단순하게 보자면 그냥 '아이러니' 같다.

 

이것은 70년대 미국 사회를 생각해보면 쉽다.

베트남 전쟁 후유증으로 미국 사회는 큰 혼란을 겪는다. 가치관의 혼란. 경제적 어려움. 과연 무엇이 사회 정의인가가 미국 사회에 던져지던 시기였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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