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고구마의 세상돋보기 go9ma 2009. 10. 28. 06:30

18세기, 이탈리아의 카르로 고지는 이 세상 모든 이야기는 36가지 극적 시츄에이션으로 정리될 수 있다고 하였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재미있는 이야기는 36가지 분류 카테고리 안에 모두 들어간다는 얘기다.

 

01. 탄원(歎願)

02. 구제(救濟)
03. 복수(復讐)

04. 육친끼리의 복수
05. 도주(逃走) 

06. 재난(災難)

07. 참혹 또는 불운
08. 반항(反抗)

09. 대담한 기획

10. 유괴(誘拐)

11. 수수께끼
12. 획득(獲得)

13. 육친끼리의 증오
14. 육친끼리의 싸움
15. 살인적 간통
16. 발광

17. 얕은 생각
18. 모르고 저지른 애욕의 죄

19. 모르고 육친을 살해함

20. 이상을 향한 자기희생
21. 육친을 위한 자기희생
22. 애욕을 위한 모든 희생
23. 사랑하는 자의 희생 

24. 강한 자와 약한 자와의 싸움

25. 간통
26. 애욕의 죄

27. 사랑하는 자의 불명예의 발견

28. 사랑의 장해
29. 적에 대한 애착

30. 야망(야망)

31. 신과의 싸움

32. 잘못된 질투

33. 잘못된 판단

34. 회한

35. 잃어버린 자의 발견

36. 사랑하는 자를 잃음

 

대부분 알고 있는 대문호의 문학 작품들은 물론 헐리우드 영화와 우리가 흔히 '막장 드라마'라고 이야기 하는 드라마들 모두 바로 이 36가지 극적 시츄에이션의 단골이다.

한 예로, 요즘 막장의 대명사처럼 회자되는 MBC 드라마 '밥줘'도 15번과 25번 간통에 해당된다. 또 KBS '다함께 차차차'는 10, 23, 24 등에 해당되며, '보석비빔밥'도 9, 13, 16, 20, 23, 28, 30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이렇듯 하나의 드라마에 다양한 극적 소재가 이용되고 있으며, 또한 지금에 와서는 36가지 외에 더 많은 시츄에이션이 추가되기도 하였다.

즉, 우리가 '막장', '막장' 하지만 그 드라마들의 근본적인 설정 자체는 절대 '막장'이 아니라는 얘기다. 간통이 소재라고 해서, 가족끼리 증오하거나 복수하는 이야기라고 해서 막장은 아니라는 얘기다. 문제는 바로 그것을 풀어내는 '기술'에 있다. 똑같은 간통 소재라도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느냐에 따라 막장이 되고, 역사에 남는 예술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 라고 하는 것에 바로 이런 구조적 모순이 있었던 것이다. 소재 자체는 흥미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36가지 극적 시츄에이션이라 드라마를 챙겨보게 되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작가의 이야기가 대중의 공감을 얻어내지 못해 시청자는 욕을 하면서 드라마를 시청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물론 이런 현상은 'TV'라는 특수한 매체의 특성도 있다. 책은 독자가 선택하여 읽어야하지만 TV는 그렇지 않다. 그저 스위치만 눌렀을 때 나오는 영상과 소리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야한다.

어떻게 보면 노벨문학상을 받은 문학 작품이나 우리의 '막장 드라마' 모두 36가지 극적 시츄에이션이라는 같은 어미의 뱃 속에서 태어난 아이다. 하지만 그 아이를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예술이 되느냐, '막장'이 되느냐로 나뉘어진다. 아이에게 어미의 가정교육이 중요하듯이 작품은 작가의 사상과 능력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이제는 드라마를 보면서 무조건 간통과 패륜 소재라고 '막장'을 논하기 전에 그것을 어떻게 풀어내는지에 대한 분석을 해보도록 하자. 그래야 진정한 '막장' 드라마를 걸러낼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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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uraijin 2009.10.28 16:03  Addr  Edit/Del  Reply

    잘읽었습니다. 저도 하도 드라마들이 막장스럽다고 소재만 보고 막장이라 간주해 버리는 분위기는 별로 바람직하진 않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장면과 장면 사이의 연결고리, 개연성, 캐릭터의 일관성이나 행동의 당위성같은 요소들이 문제이지, 단순히 설정과 소재, 사건만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국내 드라마 작가들이 저런 시츄에이션에만 집착해 그 사이사이의 요소들을 무시하는 버릇은 시청자들이 만들어준 것이기도 하고요. 암만 작품이 좋아도 결정적 시츄에이션이 없으면 외면하는 시청자들이 저런 작가들의 오만을 키워낸 것 아니겠습니까. 거기에 지나치게 TV 드라마에만 몰두해 다양한 경험을 하지 않는 시청자들의 좁은 스펙트럼도 한몫을 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