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고구마의 세상돋보기 go9ma 2010.11.15 06:30

이번 '남자의 자격' 에서는 유기견 키우기 미션을 진행하면서 이윤석씨가 어느 철학자의 명언을 인용했다.

인류 발전의 역사는 도덕적 권리와 공감의 확대였다.
- 철학자 피터싱어

이윤석씨는 '인류의 발전은 기술의 발전이 아니다. 도덕적 권리와 공감의 확대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상황을 철학적인 분위기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에 방송국에서는 '훌륭한 말씀 잘 들었습니다만 재수없어...'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아마도 예능프로그램이니깐 시청자들에게 웃으라고 이런 자막을 넣은 듯 하다. 하지만 나는 왜 재미있지 않고 불편한 걸까?

제작진이 넣은 '재수없어'라는 자막은 농담이긴 하지만 농담 아닌 농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유식한 소리를 하는 사람에게 '재수없다'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많다.

저 자막은 분명 해당 프로그램의 작가나 PD가 넣은 것일게다.
뭐 작가나 PD가 이윤석씨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혹은 더 많을까라는 기본적인 예의범절은 제껴두고 (아마도 제작진은 김태원씨의 리액션에 대한 확대 표현이라고 이야기할 듯) 과연 '재수없어'라는 자막이 적절한 것인지 의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모르는 지식을 뽐내는 사람을 '재수없다'라고 한다. 왜 그럴까? 그것이 마치 '자기 잘난척' 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지식을 내 뱉는 당사자들은 그렇지 않다. 스스로 뽐내려고 그러는 것도 아니고, 잘난척 하려고 그러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 그 지식을 알리고 싶을 뿐이다. 좋은 지식이 있으면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할수록 세상은 더 좋아지기 때문이다. (물론 진짜 잘난척 하기 위해 그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순수한 마음으로 지식을 전파한다)

(이런 가르침의 본능은 공자님 이후 우리들 모두가 실천해야할 기본 덕목이기도 하다)

단지 내가 모르는 지식을 상대가 이야기 했기 때문에 재수가 없는 것인가?
단지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지식을 가르쳐 들었기 때문에 재수가 없는 것인가?

제작진은 왜 이윤석씨가 재수없을까?
그가 교수나 교사가 아니라서? 하지만 그는 분명 대학 교수다.

그렇다면 이 세상 모든 학교의 교사와 교수는 모두 재수없는 인간들이다. 전부 사라져야 마땅하다.
그 뿐인가. 배움과 지식의 전파가 가득한 서점은 재수없는 장소다. 서점 또한 모두 없어져야하며, 국회도서관이나 광화문 교보문고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재수없는 장소다.

학교에서도 우리는 그랬다.
공부 열심히 하는 아이, 잘하는 친구를 우리는 '재수없다'며 왕따를 시키기도 했다.

이런 일종의 열등감은 사회구성원들의 무의식에 '독서나 공부를 해선 안된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세뇌시켜온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도 공부나 독서와 담을 쌓고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 자기가 아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주지 않는 문화도 만들었다. 그래서 이 나라의 정치, 문화가 이토록 발전이 더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왜 유식한 것이 재수가 없나?
그 대상이 개그맨이든, 초등학생이든 배울 것이 있으면 배워야한다. 이것은 그런 지식을 전파하는 사람의 나이나 성별, 신분, 인간성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런 것과는 상관 없이 그 지식이 가진 의미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왜 항상 유치하게 웃겨야하나?
그럼 예능 프로그램에서 감동을 주어 시청자들이 눈물을 흘리게 하는 일은 없어야한다. 하지만 요즘 예능에선 시청자들이 눈물 흘리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유식하게 감동 주는 것은 왜 나쁜가?
실제로 이윤석씨의 말에 감동을 받고 배움과 깨달음을 얻은 시청자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왜 이윤석씨는 '재수없는 인간'으로 평가절하되어야하나?

이윤석씨는 재수없지 않았다.
또한 우리는 그의 발언을 재수없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그는 잘난척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방송에선 그런 식으로 비유되었지만)

2 곱하기 2의 답은 4라며, 자신은 똑똑하다고 떠드는 사람이 잘난척이고, 재수없는 것이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마치 자기만 아는 것처럼 자신의 무식을 드러내니 잘난척하는 행동이고, 재수가 없는 거다.

하지만 이윤석씨가 그런 말을 했을 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시청자들 역시 과반수가 그 명언에 대해 알고 있지 못했음으로 이윤석씨는 잘난척도 아니고 재수없지도 않다. 그는 단지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지식으로 가르침과 깨우침을 주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방송에서의 '재수없어' 자막은 매우 적절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윤석씨는 KBS의 공영방송 의무를 다했고, 제작진이 그런 공영방송의 목적에 역행하는 자막을 내보낸 꼴이 된 것이다.

자, 이젠 누군가 유식한 말을 하면 '그런 가르침을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자. 그리고 계속 그런 가르침을 부탁한다고 이야기해주자.
그것은 곧 당신이 발전하는 것이고, 당신의 발전은 곧 이 나라와 이 사회의 발전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나라의 발전은 전 세계의 발전에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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